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3대 신용 평가사 가운데 2곳이 작년 말 비상계엄 이후 한국이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에 대해 “오래 지속되면 국가 신용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신용 등급은 외환 위기를 겪었던 1997년 투기 등급까지 떨어졌고,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8년이 걸렸다.
피치사의 아시아·태평양 국가 신용 등급 평가 담당 제러미 주크 이사는 14일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 위기가 상당히 길어지거나, 정치적 분열이 정책의 효율성과 경제 성과를 갉아먹을 경우 국가 신용 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의 아누슈카 샤 신용평가부문 부사장은 “(최근 정치적 갈등으로) 한국 경제활동이 장기적으로 혼란에 빠지거나 소비자와 기업으로부터의 신뢰가 깨지면 한국의 신용 등급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피치는 지난 1997년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단 2달 만에 ‘AA-’에서 ‘B-’까지 무려 12단계 내렸다. 무디스도 당시 한국의 등급을 6단계나 깎았다. 한국의 국가 신용도는 단숨에 ‘투기 등급’까지 떨어졌다. 1960~1970년대 한강의 기적 이후 ‘성장 일변도’ 경험만 해온 한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또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 내란 혐의 등을 둘러싸고 가열되는 정치적 논쟁이 기업의 투자 심리와 국민의 소비 심리를 꽁꽁 얼린다는 것이다. S&P의 김응탄 신용 등급 담당 이사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이 변경될 것으로 예상하진 않지만, 투자·소비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의 내수 경기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